“지난 5년은 우리에겐 위기였지만 또 기회였습니다”. 지난 17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 공과대학에서 만난 김곤호 서울대 원자력미래기술정책연구소 소장(원자핵공학과 교수)은 문재인 정부의 지난 5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취임 이후 신한울 원전 3·4호기 건설을 중단하는 등 ‘탈원전’ 정책을 추진해왔다. 서울대 원자력미래기술정책연구소(이하 연구소)는 탈원전 논란이 한창 진행 중이던 2020년 5월 문을 열었다.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구성원들로 이뤄진 싱크탱크로, 정부 정책에 대응해 원자력 학계의 입장을 대변하자는 취지로 교수·졸업생 등이 힘을 합해 만들었다.
지난 2일 취임한 김 소장은 “사실 이런 싱크탱크의 필요성은 10여 년 전부터 제기됐지만 막상 실현은 되지 못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탈원전 정책’이 나온 게 연구소 설립의 도화선이 됐다”며 “원전에 대한 부정적인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원자력 관련 연구의 미래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힘을 합쳤다”고 했다. 그 뒤 2년이 지나 지금은 박사 이상 학위를 가지거나, 원자력 관련 분야 현장 경험이 30년 이상 되는 책임급 연구원 30여 명이 참여하는 조직이 됐다.
연구소는 설립 이후 원자력학계와 사회 각계로 진출한 원자핵공학과 출신들의 구심점이 됐다. “원자력공학과 학생 중 자퇴생이 많다” 등 연일 부정적인 뉴스가 쏟아지다 보니, “후배들을 위해 써달라”는 당부와 함께 동문들의 후원금도 쏟아졌다. 김 소장은 “자칫 ‘탈원전’이란 상황을 이용하는 것처럼 보일까 후원을 먼저 부탁한 것도 아닌데, 지금도 수십만~수천만 원씩 자발적인 후원금이 들어오고 있다”고 했다.
김곤호 소장은 “이제는 ‘탈원전이냐, 원전이냐’같이 정치적 이슈로만 원자력을 보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원자력 기술 연구는 반도체를 만드는 과정이나 수소 경제 분야, 항공 우주 산업, 방사선 치료 등 미래 주목 받는 다양한 산업과 깊은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김 소장은 “국내 반도체 회사에 원자력 전공자가 지원했는데, ‘원전 연구하는 학과에서 왜 여길 오느냐’며 퇴짜를 놓는 경우도 있었다”며 “지난 5년간 원자력 발전소 문제만 지나치게 부각됐지만 미래를 이끌어가는 기술로서의 원자공학을 널리 알리겠다”고 말했다.
국민이 원자력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돕는 것도 연구소의 역할이다. 김 소장은 “우리는 그간 우리가 하는 연구만 생각한 측면이 있는데, ‘어떤 기술을 인류를 위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와 ‘국민은 왜 불안해하는가’ 같은 생각을 하면서 연구를 해야 한다는 점을 깨달았다”며 “이를 위해선 인문학적 소양이 필요하다는 점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지난 5년간 퍼진 원전에 대한 부정적 인식 탓에 뛰어난 인재들이 이 분야에 진출하는 걸 꺼릴 수 있다는 게 최근 학계의 가장 큰 걱정이다. 김 소장은 “언제 또 ‘탈원전’할지 모른다는 우려 대신 연구소가 앞장서 원자력에 대해 청소년들이 더 많은 관심을 갖고 꿈을 키울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강다은 기자 kkang@chosun.com박지민 기자 bgm@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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