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력은 탄소 중립 시대의 불가피한 선택”
- 주한규 서울대학교 원자핵공학과 교수
- 승인 2021.07.12 13:00
- 호수 1656
“윤석열 전 총장과 만나 탈원전 정책의 무모함 논의
향후 10년간 1000조 규모 원전 시장 놓쳐선 안 돼”
지난 월요일(7월5일) 아침 윤석열 전 검찰총장 측에서 전갈이 왔다. 탈원전 정책 실정에 대해 고견을 듣고 싶으니 만날 수 있냐는 것이었다. 필자는 윤 전 총장이 출마선언문에서 ‘법을 무시하고 세계 일류 기술을 사장시킨 탈원전’이라는 표현으로 탈원전 정책을 현 정부의 3대 실정 중 하나로 지적하는 것을 보고서 아주 적확하게 표현했다는 호감을 갖고 있었기에 흔쾌히 수락했다. 처음 만난 윤석열 전 총장이 일성으로 “SMR(소형모듈원자로)에 관한 주 교수의 설명서를 잘 보았다”고 해 좀 놀라웠다.
尹의 첫 질문 “소형 원자로 얼마만큼 안전한가”
당초 대화 목적은 탈원전 정책 실정에 대한 상세한 파악이었지만 SMR로 운이 떼어지면서 대화는 자연스럽게 월성 1호기 수사 문제로 옮겨졌다. 그는 검찰총장 직을 사퇴한 핵심 요인이 월성 1호기 수사에 대한 현 정권의 거부감이었다고 했다. 이어서 원자력 에너지 진흥에 관해 얘기를 나눴다. 윤 전 총장의 첫 질문은 SMR이 송도 신도시 같은 데 설치할 만큼 안전하냐는 것이었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 이후 SMR이 세계적인 기후변화 대처의 유효한 수단으로 각광받고 있음을 반영한 질문이었다. 필자는 SMR뿐만 아니라 대형 원전 공히 원자력 수소 생산을 통한 탄소 중립 실현에 필수적인 요소라는 점을 설명했다.
미국은 2050년 탄소 중립 실현을 위한 효과적인 수단으로서 선진 원자력 기술을 적극적으로 개발하고 있다. 그중 하나가 다양한 유형의 SMR 개발이다. 가장 대표적인 SMR은 작년에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의 인가를 받은 NuScale사의 NPM 원자로다. 이 원자로는 뜨거운 물은 위로 올라가고 차가워진 물은 아래로 내려오는 자연대류 순환 현상을 통해 원자로의 열을 전달하므로 전기 없이도 냉각이 가능한 안전성 높은 원자로다. 미국은 2029년 가동 목표로 아이다호 국립연구소 부지에 이 원자로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두 번째 대표적인 SMR은 빌 게이츠가 투자한 TerraPower사의 Natrium 원자로다. 나트륨은 액체금속이라 500도 이상의 고온에서도 끓지 않으므로 고온 운전이 가능하다. TerraPower사는 이 원자로의 고밀도 고온 에너지 공급 특성을 활용해 용융염 가열과 전기 생산을 병행할 수 있는 독특한 개념의 원자로를 개발하고 있다. 용융염 이용의 장점은 낮시간 태양광처럼 재생 에너지 발전이 많을 때는 원자로에서 생산된 열을 발전 대신 용융염 가열에 사용하고, 밤시간에는 가열된 용융염에서 열을 빼내 증기를 만들어 발전할 수 있기에 재생 에너지 발전기와 원전을 상호 보완적으로 운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세 번째 대표적인 SMR은 X-Energy사가 개발 중인 XE-100이라는 헬륨가스냉각 원자로다. 헬륨가스는 액체금속보다 더 높은 온도로 가열할 수 있기에 고온가스냉각 원자로는 고효율 전력 생산뿐만 아니라 물 열분해를 통한 수소 생산에 활용할 수 있다. Natrium과 XE-100 SMR은 둘 다 미국 에너지부의 연구비 지원을 받아 2027년 실증을 목표로 개발이 추진되고 있다. 이는 미국이 탄소 중립 실현에 원자력 확대가 필수적임을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원전은 같은 무탄소 전력원이지만 간헐성이라는 태생적 약점을 갖고 있는 재생 에너지와는 대조적으로 고밀도 발전이 상시적으로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한·미 원전 수출 동맹의 배경
미국은 SMR뿐만 아니라 대형 원전의 세계 시장 진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미국 에너지부는 작년 초에 국가안보확보전략이라는 부제가 붙은 ‘미국 원자력 경쟁력 회복방안’이라는 정책제안서를 작성한 바 있다. 여기에는 2030년까지 세계 원전시장은 5000억~7400억 달러(600조~890조원) 규모로 성장할 것이라는 미국 상무부 전망이 적시돼 있고, 현재 러시아와 중국이 장악하고 있는 원전시장에 대한 미국 지배력을 회복해 핵확산 위험을 제거함으로써 미국 안보를 확보하기 위한 다양한 전략이 제시돼 있다. 미국은 작년 말 이 전략에 따라 루마니아, 불가리아, 폴란드 등 동구권 국가들과 원자력 협력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그러나 30년 이상 원전 건설이 없었던 미국은 자체 원전 기기 제작기술을 상실했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원전 기술력을 필요로 한다. 이것이 문 대통령의 미국 방문 시 합의된 한·미 원전 수출동맹의 배경이다.
향후 10년간 거의 1000조원에 달하는 세계 원전시장이 열리는 것은 각국이 원자력이 기후변화 대처에 유효한 수단임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원전을 도입해 신규 원전운영국이 되는 UAE, 벨라루스, 방글라데시, 터키를 비롯해 사우디아라비아, 체코, 영국, 이집트, 영국, 인도 및 전술한 동구 3개국에서 신규 원전을 추진하고 있음이 이를 입증한다.
재생 에너지는 발전 비중이 늘어날수록 에너지저장장치(ESS) 증설 필요성이 매우 높아진다. 예를 들어 이용률이 15%인 태양광발전으로 30%의 발전 비중을 달성하려면 태양광 설비용량은 평균전력의 200%가 돼야 하기에 태양이 있을 때 발전량은 필요한 발전량 100%를 훨씬 초과하게 돼 초과 발전량의 저장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ESS 운영비용은 재생 에너지 발전비용보다도 훨씬 비싸다. 2025년 예측치가 175원/kWh 정도가 된다. 태양광발전 원가가 100원/kWh로 떨어지면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진다. 따라서 재생 에너지로 60% 이상의 발전량을 충당하겠다는 2050 탄소 중립 로드맵은 ESS 추가에 드는 막대한 비용을 고려하면 실현 불가능한 방안이다. 탄소 중립 실현에 원자력 활용이 불가피한 중요한 이유다.
중립 실현을 위해서는 일차적으로 에너지 소비에서 전기화율을 높이고 전기를 무탄소 발전원으로 생산해야 한다. 나아가 수송과 산업 분야에서도 무탄소화를 달성해야 한다. 이에 유효한 수단이 수소의 활용이다. 무 수소는 물전기분해를 통해 생산할 수 있다. 그런데 재생 에너지 전기분해는 간헐성 때문에 고가의 전기분해 설비 이용률이 낮아져 수소 생산단가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 반면 원자력은 전기분해 설비 이용률이 높을 뿐 아니라 전력단가도 재생 에너지보다 훨씬 낮기 때문에 반 이하의 비용으로 수소를 생산할 수 있다. 이렇게 보나 저렇게 보나 원자력은 저비용 청정 전력과 수소 생산을 통해 중립 시대에 불가피한 선택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필자는 이런 얘기를 윤석열 전 총장에게 했고, 그는 잘 이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