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과뉴스] [기고] 원전산업, 생태계 복원 넘어 선도체제 구축으로
우리나라의 높은 원전산업 경쟁력의 원천은 튼튼한 원전 공급망에 있었다. 원전 공급망은 한국수력원자력 등 원자력발전 사업체에 물품 및 용역을 공급하거나 공사를 도급받아 수행하는 업체들로, 1차 공급업체와 이들의 하도급업체들로 구성된다.
올해 발간된 원자력산업 실태조사에 따르면 탈원전 정책 기간에 이들 원자력 공급 산업체의 매출은 2016년 대비 2021년에 29%(약 1조6000억원)가 감소했고, 인력은 16.2%(3630명)가 줄어들었다. 같은 기간 원자력발전 사업체와 원자력 연구·공공기관의 인력이 각각 7.0%와 22.9%가 증가했음을 고려하면 탈원전 정책은 원자력 공급 산업체에 가시적 피해를 주었으며, 특히 통계에 잡히지 않은 대다수 중소 하도급업체들에는 더욱 큰 폐해를 남겼을 것이다.
파괴된 원전산업 생태계 복원을 위해서는 신규 원전 건설, 계속운전, 원전 수출 등을 통한 지속적인 일감 발주가 핵심이다. 현재 신한울 3·4호기는 건설 재개를 위한 일련의 행정 절차를 마치고 본격 착공을 위해 원자력안전위원회의 건설 허가만을 남겨둔 상태다. 올해 3월 한국수력원자력은 두산에너빌리티와 10년간 2조9000억원에 이르는 신한울 3·4호기 주기기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드디어 두산에너빌리티의 460여 중소 하도급업체들에 일감 발주의 물꼬가 트인 것이다.
5월부터는 2조원 규모의 보조기기 발주도 시작됨으로써, 1300여 보조기기 제작 중소업체들에도 회생의 길이 열렸다. 그러나 이도 지난 정부의 탈원전 일감절벽으로부터 살아남은 중소업체들에만 해당할 것이다.
작년 7월에 전국경제인연합회에서 발표한 31개 원자력 기업 대상 설문조사에서는 국내 원전산업의 경쟁력이 탈원전 이전 대비 65% 수준으로 감소했고 생태계 회복에 3년 9개월이 소요될 것으로 조사된 바 있다. 전국 원자력 전공 학과 학부생들은 2017년 대비 2022년에 25%가 줄었다. 대형 원전 중심의 원전산업 생태계 복원만 시급한 것은 아니다. 지난 정부 5년간 우리의 원전 기술력이 답보하는 사이, 전 세계는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차세대 소형모듈원전(SMR) 개발에 박차를 가해왔다. 우리는 이 미래 경쟁력 위기를 원자력 선도 체제로 변모시킬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 원자력은 한국수력원자력, 한국원자력연구원 등의 공공기관 중심 체제로 유례없는 성공을 이루었다. 이제 '빠른 추격자(fast follower)'에 만족할 것인지, 아니면 '선도자(first mover)'로 탈바꿈할 것인지 갈림길에 서 있다. 초격차를 만들어낼 차세대 원자력 선도 체제는 '민간 중심 경쟁 체제' 구축이 관건이다.
전 세계 소형모듈원전 개발사들은 우리나라의 높은 원자력 기술력에 주목하며 협력을 요청하고 있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들은 앞다퉈 외국 소형모듈원전 개발사들에 투자하고 있다. 지금이 기회다. 정부와 공공기관이 민간을 지원해 소형모듈원전의 설계, 제작, 운영에 경쟁 체제를 도입해야 한다. 정부는 경주와 울진을 각각 소형모듈원전과 원자력 수소 국가산단 후보지로 발표한 바 있다. 이달 초에는 소형모듈원전 분야 국가 경쟁력 강화를 위한 민관 합동 'SMR 얼라이언스'도 출범했다. 원자력 국가산단 및 SMR 얼라이언스가 원전산업 선도 체제 구축이라는 큰 밑그림하에 성공적으로 추진되기를 기대한다.
[심형진 서울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