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과뉴스] 후쿠시마 오염수 문제, 정쟁 아닌 ‘상식과 합리’로 판단해야[기고]
최근 몇 주간, 전국이 일본 후쿠시마(福島) 제1원전 오염처리수 배출 문제로 떠들썩하다. 일본, 원자력, 방사능, 먹거리. 국민적 감성을 자극하고 격앙시키기에 너무 달콤한 이 소재는 자연스레 정쟁의 소재로 올리기에 적합한 안줏거리가 되어버렸고, 외신이 토픽감으로 보도하는 ‘천일염 사재기’란 이상 현상까지 나타나기에 이르렀다.
방사선 분야를 연구하는 입장에서는 특별히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이 문제가, 2023년 현재 이렇게까지 전 국민적 관심을 받는 핫이슈가 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부단히 ‘논란거리’라 애써 명명하면서 과학에 의탁해 혼란과 논란을 부추기는 이들이 많으나, 이 문제는 과학적 논쟁의 범위를 이미 넘어섰다. 충분히 설명된 사실에 대해 다 들어보고도 애써 모른 척하는 것인지 마치 설명된 적이 없다는 듯 반복적으로 같은 의혹들만 제기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들에게는 실제 이 문제의 본질이 과학에 있지 않은 것 같다. 무미건조한 ‘합리’보다는 짜릿한 ‘승리’를, ‘팩트’보다는 ‘좋아요’를 원하는 심리가 솔직한 그들의 속내가 아닐까 생각한다.
새로 제시된 문제에 대해 추가 설명이 필요하다면 궁금증이 해소될 때까지 얼마든지 부연 설명을 하는 것이 도리일 것이다. 그러나 여러 의혹에 대해 이미 충분한 자료가 제시돼 왔고, 많은 설명이 다양한 눈높이에 맞춰 반복적으로 이뤄졌다. 현재 정부 입장에서도 조사 및 검증 과정을 통해 이제까지 미처 밝혀지지 않았던 새로운 과학적 사실 및 주장을 제기하기보다는, 국제원자력기구(IAEA)를 통해서도 검증된 결과물을 국민 정서를 고려해 어떻게 하면 불안이나 불만 없이 전달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뉘앙스의 문제를 고민하는 상황인 듯하다. 몇 달 정도만 지나면 분명 이 문제는 지나가 버리고 잊힌 또 다른 문제 중 하나가 될 것이다. 그러나 정성적인 문제 제기와 논란이 오가는 와중에도 과학적 사실과 정량적 분석은 분명히 존재했고, 문제의 본질은 이를 받아들이는 우리의 정서와 태도에 있었음을 기억해 두었으면 한다.
먼저, 과학적 사실은 이렇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세슘-137이 약 17페타베크렐(1015 ㏃) 자연으로 방출됐으며, 이 중 대부분은 사고 직후 일주일 내에 대기 및 해양으로 유입됐다. 바다로 흘러들어 간 것은 최소 10페타베크렐 이상이다. 이는 냉전시대 핵보유국들의 핵실험으로 인해 낙진으로 분출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세슘-137이 약 1엑사베크렐(1018 ㏃), 체르노빌 원전 사고로 인해 약 70페타베크렐이 자연으로 방출된 것에 비하면 훨씬 작은 수치다. 또 후쿠시마 원전 운영사인 도쿄(東京)전력은 사고 당시 원자로 냉각 및 잔열 냉각을 위해 주입했던 냉각수와 그간 부지 내로 유입되었던 지하수와 빗물 등을 모아서 문제가 될 수 있는 방사성 핵종들을 이미 걸러냈다. 이 중 제거가 불가능한 삼중수소에 대해서만 사고 이전 원전 운영 시의 배출 기준인 연간 22테라베크렐(1012 ㏃) 이하로 희석해 바다로 내보내려 하는 것이다.
한국 정부의 후쿠시마 오염처리수 전문가 시찰단이 지난 5월 24일 후쿠시마 제1원전 현장을 시찰하고 있다. 도쿄전력 제공
이에 IAEA는 이달 초 ‘후쿠시마 원전 처리수의 안전성 검토에 대한 최종 보고서’를 통해 오염수 처리, 희석 및 배출 절차의 기술적·규제적 측면과 환경영향평가에 대한 검증 결과 일본의 배출 계획이 IAEA 안전기준에 부합한다는 결론을 공표했다. 지난 5월 말 다른 여러 나라 분석기관과의 독립적 교차 검증 및 숙련도 검정을 통해서도 도쿄전력의 분석 방법론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실제로도 가장 먼저 방류될 것으로 예상되는 K4-B 저장조의 오염처리수에서 기준치 이상의 방사성 핵종이 검출된 바 없다.
과학적 검증에서 문제가 없다고 밝혀지자 국내에서는 이제 “IAEA를 신뢰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를 제기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유엔의 발의로 설립 돼 유엔과 가치를 공유하며 수십여 년간 원자력의 평화적인 이용을 위한 중심체 역할을 해온 IAEA의 정체성을 의심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까지 하는 이들이 마음속에 그리고 있는 국제질서는 과연 누구에 의해 어떻게 유지될 수 있는 체계인지 되묻고 싶다.
방사선 방호의 가장 중요한 원칙 중 하나가 ‘ALARA(As Low As Reasonably Achievable)’다. ‘합리적으로 달성 가능한 범위에서 최대한 낮게’라는 의미다. 많은 사람이 이 원칙에서 ‘낮게’만을 강조하는데, ‘합리적으로 달성 가능한 범위’라는 부분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세포를 파괴하고 살균작용을 하는 자외선이 싫다고 어둠 속에 은둔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닌 것처럼, 그렇다고 자외선살균기에 들어가 살아야 할 필요도 없는 것처럼, 인간은 이성과 합리적 판단에 근거해 상식적인 범위에서 각자의 삶을 최적화시키며 살아간다. 부디 현실과 동떨어진 상상과 시나리오에서 벗어나길 바란다. 이번 문제 역시 상식과 합리의 선에서 논의가 진행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