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매경이코노미스트] 에너지안보시대, 원자력이 답이다

2026-05-19l 조회수 10

심형진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

심형진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

"1970년대 오일쇼크, 코로나 팬데믹, 우크라이나 전쟁을 모두 합친 것보다 더 심각한 에너지 공급 위기다." 파티 비롤 국제에너지기구(IEA) 사무총장이 올해 4월 역설한 말이다. '에너지판 IMF 총재'로 불리는 그의 경고에 전 세계가 촉각을 곤두세웠다.

이란 전쟁으로 촉발된 세계 에너지 위기는 얼마나 지속될지 알 수 없다. 그러나 IEA는 'State of Energy Policy 2026'에서 지금의 위기는 1970년대와 결정적 차이가 있다고 했다. "1970년대와 달리, 지금은 석유·가스 소비를 더 빠르고 실질적으로 줄일 수 있는 기술적·정책적 기반이 마련돼 있다."

 

IEA가 주목한 기술은 재생에너지·원자력·에너지 효율화·전기화다. 1970년대 오일쇼크가 IEA 창설과 비축유 의무화를 낳았듯, 이번 위기는 에너지안보 강화를 위한 무탄소에너지 체제로의 전환을 앞당길 것이다.

이란 전쟁 이후 전 세계는 무탄소에너지 기술의 총동원에 나서고 있다. 재생에너지와 함께 24시간 안정적으로 대용량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원자력에 대한 관심이 급격히 높아지고 있다.

발 빠른 일본은 세계 최대 원전인 가시와자키-가리와를 재가동한 데 이어 미국과 400억달러 규모의 차세대 SMR 협약을 체결했고, 대만전력공사는 전쟁 발발과 맞물려 마안산 원전 재가동 계획을 원자력안전위원회에 제출했다. 독일 출신의 EU 집행위원장은 "저배출 전원을 외면한 것은 전략적 실수였다"며 성급한 원전 폐쇄에 제동을 걸었다. 산업계의 움직임도 빠르다. AI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가 2035년까지 현재의 세 배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마이크로소프트는 스리마일섬 원전을 20년간 재가동하는 계약을 체결했고, 구글은 SMR 스타트업과 500㎿ 규모의 전력구매계약을, 아마존은 워싱턴주에 SMR 12기 단지를 조성하는 계획을 추진 중이다.

우리나라는 세계 최고 수준의 원자력 기술을 이미 갖추고 있다. 원전은 발전원가에서 연료비 비중이 10%에 불과한 데다, 한국수력원자력은 이미 3년 치 이상의 우라늄 연료를 비축해 두고 있어 국제 에너지 가격 충격과 공급 차단에 사실상 이중으로 무감각하다.

메르켈 시대의 탈원전이 독일 제조업 공동화를 불러 지금 독일은 땅을 치고 있다. 값싸고 안정적인 전력은 반도체·철강·석유화학 등 주력 산업 경쟁력의 뿌리다. 60여 년간 축적한 우리의 원전 기술은 UAE 바라카·체코 두코바니 수주로 만천하에 그 수준을 증명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원전 용량을 2050년까지 400GW로 확대하겠다고 선언한 가운데, 우리 산업통상부 장관은 올해 초 미국 에너지부·상무부 장관과 만나 APR1400의 미국 내 건설을 공식 제안했다. 혁신형 소형모듈원전(i-SMR)은 2028년 표준설계인가를 목표로 개발 중이며, 두산에너빌리티는 테라파워, 엑스에너지 등 미국 주요 SMR 프로젝트에 기자재를 납품하며 글로벌 파운드리 산업으로 도약하고 있다.

마침 정부는 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을 수립 중이다. 2050년까지 대형원전 20기, SMR 12기를 추가 건설하더라도 2050년 원전 발전 비중은 35% 수준이다. 우리나라는 세계 어느 나라보다 빠르게 원전을 건설할 역량을 갖추고 있지만, 용지 확보와 인허가에 소요되는 기간을 감안하면 신규 원전 용지를 확보해야 할 적기는 바로 지금, 이 순간이다. 에너지안보 강화와 탄소중립 달성, 산업 경쟁력 제고라는 세 마리 토끼를 함께 잡으려면 원자력이 답이다. 전 세계가 이 기술을 앞다퉈 채택하는 지금, 12차 전기본이 대형원전과 SMR을 담대하게 반영하기를 기대한다.

[심형진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