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매경이코노미스트] 영덕 원전의 부활, 다신 잔혹사 없어야

2026-06-30l 조회수 176
14년전 갈등 첨예하던 영덕
압도적 찬성으로 원전 유치
정권 따라 부침 겪지 않게
원자력 특별법을 마련해야

심형진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

1964년 옛 소련의 천문학자 카르다쇼프는 더 많은 에너지를 다루는 문명일수록 더 높은 단계로 나아간다고 보았다. 한 문명의 발전 수준을 그것이 다루는 에너지의 양으로 가늠한 것이다. 일론 머스크가 100만기의 태양광 위성을 우주에 띄워 인공지능 데이터센터를 돌리겠다는 구상을 내놓은 것도, 폭증하는 전력 수요를 지상의 한계 너머에서 풀려는 시도다.

바야흐로 막대한 에너지가 문명의 도약을 좌우하는 시대다. 그 해답의 한 축이 원자력이다. 적은 양의 핵연료에서 막대한 전기를 끌어내는 현대 과학기술의 총아이자, 화석연료를 대신할 무탄소 에너지의 기둥이다.

지난 17일 신규 대형원전 용지로 경북 영덕이, 첫 소형모듈원전(SMR) 용지로 부산 기장이 확정됐다. 원자력이 탈원전의 역경을 딛고 본궤도로 돌아왔음을 알리는 신호다. 국내에서 신규 원전 용지가 정해진 것은 2012년 천지·대진 예정구역 지정 이후 약 14년 만이다. 눈여겨볼 것은 영덕에 들어설 자리가 바로 그 백지화됐던 천지원전 예정지라는 점이다. 한때 거센 찬반 갈등을 겪었던 영덕은, 주민 86%의 압도적 찬성으로 원전 유치에 힘을 실었다. 지난해 대형 산불이 할퀴고 간 영덕의 주민들이, 원전을 막연한 공포가 아니라 지역 재건과 생존의 동력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이런 변화는 영덕만이 아니다. 에너지정보문화재단의 국민인식조사를 보면, 2023년 조사를 시작한 이래 원자력이 필요하다는 응답은 해마다 높아져 지난해에는 열 명 중 여덟 명을 넘어섰고, 안전하다는 응답도 75%를 웃돌았다. 올해 초 용지 선정에 앞서 정부가 따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신규 원전 건설에 찬성하는 의견이 약 70%에 이르렀다. 이는 한때의 분위기가 아니라, 이념의 대결을 넘어 에너지 안보와 탄소중립이라는 시대적 요구 앞에서 원자력의 역할을 차분히 저울질하게 된 결과다. 거리에서 탈원전 반대 서명운동을 벌이던 시절을 떠올리면 격세지감이다.

이제 과제는 이 시대적 요구를 흔들림 없이 떠받칠 정책적 기반이다. 탄소중립은 발전 부문만의 일이 아니다. 산업의 연료와 공정을 바꾸고 수송과 건물의 에너지를 다시 짜며, 전력망과 시장제도까지 함께 손보는 사회 전반의 대전환이다. 이 전환의 기술적 경로를 그려낼 최상위 설계가 있어야 하는데, 지금 우리에게는 그 밑그림이 없다. 발전과 소비, 산업을 두루 아울러 5년마다 수립되던 에너지기본계획이 2022년 근거법 폐지로 사라진 뒤, 2년 주기로 발전 부문에 국한된 전력수급기본계획이 그 빈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과거 학계와 산업계, 시민단체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 권고안을 빚어냈듯, 전환의 큰 그림을 함께 그릴 숙의의 장으로 에너지기본계획을 되살릴 필요가 있다.

국가 에너지 계획에서 원전의 역할이 확고할 때, 원전 산업은 비로소 글로벌 수출산업으로 도약할 수 있다. 영덕 원전의 준공 목표인 2037·2038년까지 우리는 두세 차례의 정권 교체를 경험할지 모른다. 그사이 방향이 또 뒤집혀서는 안 된다. 탈원전 5년간 일감이 끊긴 협력업체가 무너지고 전공 학생이 떠났던 경험은, 산업 생태계가 한번 흔들리면 복원에 얼마나 오랜 시간이 드는지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그런데 우리 법체계에는 원자력을 하나의 산업으로 떠받칠 근거 법률이 아직 없다. 지난 국회에서 발의돼 여야의 논의를 기다리는 원전산업 지원 특별법은, 기술개발과 인력양성, 공급망과 수출 지원을 정권이 바뀌어도 이어갈 제도로 정착시키자는 것이다. 진영을 떠나 함께 매듭지을 사안이다. 에너지가 문명의 척도라면, 그 기반을 단단히 하는 일에도 같은 무게의 지혜가 필요하다.

[심형진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