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특별기고] 미국 원전 건설을 도약의 출발점으로

심형진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
이번 합의의 의미는 상징을 넘어선다. 사업 규모는 최대 1200억달러로 추산된다. 미국은 세계 최고의 원천기술과 인허가 체계, 금융 기반을 갖추었으나 오랜 건설 공백으로 공급망과 사업수행 경험이 약해졌고, 우리는 설계부터 기자재 제작, 시공, 시운전, 운영·정비에 이르는 전주기 역량과 적기 건설 실적을 갖추었다. 양국의 강점이 결합되는 구조다. 노형 배분에 따라 참여 범위는 달라지겠지만, 주기기와 장납기 기자재, 시공에 우리 기업이 참여하면 수주 규모는 수십조원에 이를 수 있다. 특히 초기 투자금을 현금 송금 대신 장주기 기자재 선발주에 투입하기로 한 것은 투자금이 국내 일감으로 되돌아오는 구조라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우리 측이 웨스팅하우스 지분과 의결권을 확보하면 원전 수출 때마다 반복돼 온 지식재산권 문제를 푸는 발판도 마련된다.
관건은 우리 원전산업계가 이 물량을 감당할 역량을 갖추는 일이다. 우리는 1978년 고리 1호기 준공 이래 반세기 가까이 원전 건설을 멈춘 적이 없으며, 2018~2019년에는 신한울·새울 5기와 바라카 4기를 합쳐 9기를 동시에 건설한 경험도 있다. 그러나 이번에는 신한울 3·4호기와 두코바니 5·6호기, 11차 전기본에 반영된 신규원전 2기에 미국 사업까지 겹친다. 우리 공급망이 감당해야 할 물량이 전례 없는 수준에 이르는 것이다. 미국 사업의 다수가 웨스팅하우스 주도의 AP1000이라 해도, 대형 단조품과 주기기, 모듈 제작 등 미국 공급망의 병목을 메우는 일은 우리 몫이다. 반면 사람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2024년도 원자력산업실태조사에 따르면 원전산업 매출은 35조9000억원으로 역대 최대였지만, 공급산업체 인력은 2만645명으로 2016년보다 1700명 적고, 2025년 기준 원자력 전공 재학생은 2071명으로 2017년보다 25% 줄어든 상태다.
늘어난 일감에 맞춰 사람과 산업의 체계를 함께 키워야 한다. 인력은 산업계 수요를 담은 정기적인 수급 전망을 대학 정원과 교육과정에 반영하고, 원전 설계·건설·운영 경력자를 인력풀로 묶어 현장에 다시 연결해야 한다. 실태조사에서 기업들이 가장 원한 재직자 교육과 전공자 인턴십도 넓혀야 한다. 사업 체계도 손봐야 한다. 거론되는 대로 한전과 한수원이 웨스팅하우스와 함께 합작법인을 세워 인허가·설계·시공·운영 역량을 한곳에 모으고, 수출 전용 정책금융과 장납기 품목 발주 지원체계도 서둘러 갖추어야 한다. 무엇보다 영덕 신규원전 등 국내 건설이 계획대로 추진돼야 공급망이 미국 사업까지 버틸 수 있다.
이 모든 과제에 앞서 미국 원전 8기 건설을 어떻게 볼 것인가가 중요하다. 대미 투자의 한 사업으로만 본다면 8기에서 끝나겠지만, 우리 원전산업을 글로벌 수출 산업으로 키우는 국가 전략의 첫걸음으로 삼는다면 그다음이 열린다. 반세기 전 배운 기술로 원전 종주국에 우리 원전을 짓는 오늘이, 우리 원전산업이 세계 원전시장의 이끄는 출발점이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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