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글로벌포커스] 원전 공론화, 탈진영 계기로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심형진 교수]
메가프로젝트, 녹색대전환, 원전 공론화. 지난 두 달 사이 겹친 에너지 정책 관련 세 장면은 원자력계에 씁쓸함을 남겼다. 왜 원전만 묻는가. 8월 20일 제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총괄위원회는 3대 메가프로젝트를 반영해 2040년 최대 전력 전망을 4월보다 26GW 넘게 높인 158~165GW로 다시 내놓았다. 10월 7일 정부는 1000조원을 투입하는 한국형 녹색대전환(K-GX) 전략을 발표하며 2040년 석탄발전 전환 로드맵과 소형모듈원전(SMR)의 국가전략기술 지정 추진을 함께 담았다. 10월 14일 원전 공론화위원회는 숙의 의제를 '미래 전력 수요에 대비한 원전의 역할과 비중'으로 정하면서 정부의 재생에너지 보급 목표와 용지가 확정된 원전은 논의에서 제외했다. 수요도, 재생에너지도, 석탄 폐지도 정부가 정하는데 원전만 국민에게 묻겠다는 것이다.
올해 6월 한국에너지정보문화재단 조사에서 원자력 발전이 필요하다는 응답은 91.4%, 원전 비중을 확대해야 한다는 응답은 71.2%였다. 지난 1월 기후에너지환경부 의뢰 조사에서는 향후 확대가 가장 필요한 발전원 하나를 고르게 하자 한국갤럽은 재생에너지 48.9%·원자력 38.0%, 리얼미터는 재생에너지 43.1%·원자력 41.9%로 나뉘었지만 원자력 발전이 필요하다는 응답은 갤럽 89.5%, 리얼미터 82.0%였다. 두 문항을 겹쳐 보면 원자력을 첫손에 꼽지 않은 응답자 가운데서도 갤럽은 8할 이상, 리얼미터는 7할 가까이가 원전이 필요하다고 답한 셈이다. 국민은 원전과 재생에너지를 양자택일의 대상이 아니라 모두 필요한 발전원이라고 답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국민의 답이 이렇게 모아져 있는데 정치권의 답은 갈려 있다는 점이다. 물론 원전은 정치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특히 우리나라는 원전 기수를 국가 계획이 정하고 폐기물 관리 책임도 국가가 지니 더욱 그렇다. 관건은 정치적이냐가 아니라 당파적이냐다.
미국에서는 공화당이 에너지안보를, 민주당이 탄소중립을 이유로 원전을 지지하니 정권이 바뀌어도 정책이 뒤집히지 않는다. 핀란드 녹색당은 2022년 원전 반대 입장을 접었다. 서로 다른 이유로 같은 결론에 이르는 것, 이것이 탈진영이다. 우리는 원전을 기술 문제가 아니라 진영의 정체성 문제로 다뤄왔고, 그 결과 원전정책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방향이 달라졌다. 그 사이 피해는 원전산업계의 몫이었다.
그런 점에서 이번 공론화는 대상 선정부터 잘못되었다. 국민이 한 묶음으로 보는 두 전원 가운데 원전만 떼어 물으면 원전은 다시 '합의가 필요한 특별한 선택지'로 표시된다. 원자력 전문가를 이해관계자로 분류해 위원회에서 제외한 결정도 같은 효과를 낸다.
반면 원전과 재생에너지, 가스, 에너지저장장치, 송전망을 하나의 잣대로 총비용 앞에 세우면 원전은 여러 전원 가운데 하나로 평범해진다. 원전이 이렇게 평범해질 때 탈진영도 가능해진다. 아쉽게도 의제는 이미 정해졌지만 앞으로 만들 설문 문항과 숙의자료집에서만큼은 원전 비중에 따른 전원 구성과 총비용을 함께 제시해 시민참여단이 에너지 믹스 전체를 놓고 답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제 원전산업을 진영 논리에서 풀어줄 때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전력수급기본계획을 세울 때마다 원전을 놓고 같은 논쟁을 되풀이하는 일은 이번으로 끝나야 한다. 정치권은 원전을 쓸 것인가를 두고 다툴 것이 아니라 에너지 정책을 정권의 색깔에서 떼어내 일관되게 이어갈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원전은 탈정치할 수 없다. 그러나 탈진영은 할 수 있고, 국민은 이미 그 문턱을 넘었다. 남은 것은 정치가 국민을 따라오는 일이다.
